유저 창작 콘텐츠

[만화/소설] 다 카포(Da capo) 上 [테일즈위버]

* 테일즈위버의 <외전3>을 기반으로 재구성한 이야기.

* 2차 캐릭터 해석 주의

* 글자수가 계속 초과되어, 결국 상하편으로 분리했습니다.

 

 

 

 

다 카포(Da capo)

 

“D.C.(Da capo): 처음부터 다시 연주하다.”

 

 

 

말려들게 해서 미안해요.

 

애처로이 눈물을 흘리는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무릎을 꿇고 앉아 누군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뿌연 안개 때문에 여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은빛으로 반짝이는 날개만은 어렴풋하게 인지할 수 있었다. 몇 번이나 반복해서 꾸게 되는, 아주 서글픈 꿈을 오늘도 또 다시 보고 말았다.

당신은 누구야?

큰 소리로 외쳐보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내 목소리가 들리는 모양이다. 여자가 내 쪽을 보며 쓸쓸히 웃었다.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여자가 손을 내젖자 하얗고 푸른빛이 시아를 가득 매웠다. 향긋한 꽃냄새를 맡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온통 새하얀 공간 속에 누워있다가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어느 저택 침실이었다. 침대 위에는 또 다른 내가 누워있었다. 검은 머리를 한 백작이 나를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 보았고, 나는 이유도 없이 흐느껴 울었다. 그리고 늘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그런 안타까운 일이…….

 

또다시 같은 말을 읊고 있는 걸 보면, 이제 슬슬 꿈에서 깰 시간인 모양이다. 조금만 더 자고 싶은데……. 요란한 타종(打鐘)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눈을 떴다.

 

 

 

 

* * *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막시민이 별안간 머리를 긁으며 일어났다. 때마침 수업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막시민이 기세 좋게 기지개를 켜자 에밀 교수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막시민 리프크네, 벌점 30.”

네네, 좋을 때로 적어가세요.”

다른 학생들이라면 기겁을 하며 교수님의 바지자락을 붙잡았겠지만, 막시민은 쓸데없이 대담했다. 에밀 교수가 잔소리를 늘어놓았지만 막시민의 귀에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냉큼 빌라로 돌아가 침대에 누워 다시 잠들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막시민의 생각을 들여다본 에밀이 혀를 치며 짜증을 부렸다.

그렇게 원한다면 벌점 30점을 더 얹어주지.”

막시민이 호기롭게 휘파람을 불었다. 에밀은 고개를 저으며 지긋지긋한 강의실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막시민이 너무 예상 밖의 행동을 보여 그만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가 갑자기 눈물을 툭툭 흘리는 것이 아닌가!

이제야 조금 사태가 파악된 모양이군. 하지만 울고 매달려 봤자 감점은 감점일세!”

그러나 막시민은 에밀의 말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 교수가 드디어 환각이라도 보나 본데, 안 그러냐?”

옆 자리에 앉은 조슈아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데 기분 나쁘게도, 조슈아 역시 에밀과 똑같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못 볼 것이라도 본 것처럼 뺨까지 해쓱했다.

뭐야? 넌 또 귀찮은 유령이라도 붙었…….”

막시민, 무슨 일 있어?”

너 지금 내 말 잘랐냐!”

막시민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짜증을 삼키며 삐뚤어진 안경을 고쳐썼다. 오른 손을 올려 검지와 엄지로 안경테를 잡으며 천천히 제자리를 잡는데이상하게 뺨이 축축했다. 갑자기 등골이 싸해졌다. 얼른 양손으로 눈가를 어루만져보았다. 한심할 정도로 많은 양의 눈물이 그렁그렁 묻어났다. 막시민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이게, 뭐야!”

그 사이 눈물 한 방울이 다시 툭, 떨어졌다.

제 의지와는 상관없는 눈물이 비 오듯 계속 흘러내렸다. 막시민은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임으로 이처럼 영문 모를 일이 달가울 리 없었다. 자못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친구들의 태도도 몹시 불편했다.

전부터 가끔 혼자 울던데……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이야기해줘.”

조슈아의 말에 막시민은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이런, ***!”

막시민이 교복 소매로 거칠게 눈을 비볐다. 눈이 쓰라린걸 보니 정말로 울고 있긴 한 모양이다. 역정이 오른 막시민은 벌겋게 부은 눈을 한 채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그가 달음박질 할 때마다 손질되지 않은 구두 발자국소리가 복도에 쾅쾅 울렸다. 이미 수업이 끝난 뒤였기에 에밀은 딱히 막시민에게 추가 제재를 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한숨만 쉬었다.

막시민의 빈자리를 돌아보며 학생들이 수근 거렸다. 그 중 루시안의 목소리가 특히 컸다.

시험을 보다가 실종되더니 막시민이 이상해졌어!”

보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며칠씩이나 행방불명 상태이다가 갑자기 낡은 마차를 타고 돌아왔을 때 말이지?”

. 그때도 조금 우울해 보이기는 했는데……. 무슨 충격 받을 일이라도 겪은 걸까.”

낡은 마차라. 란지에가 턱을 괸 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막시민이 타고 온 마차는 분명 그의 스승, 지스카르가 아노마라드에 올 때 마다 애용하던 비밀스런 교통수단이었다. 아무나 쉽게 탈 수 있는 마차가 아닌 것이다. 막시민은 어떻게 지스카르의 마차를 타고 있던 걸까. 그 잠깐 사이에 오를란느에라도 다녀온 건가…….

똑똑한 란지에는 뭔가 알 것 같아?”

글쎄요. 저도 잘…….”

루시안의 물음에 란지에는 그저 능청스러운 미소만을 지었다.

 

 

 

 

* * *

 

 

 

 

잔득 기분이 상한 막시민은 빌라가 아니라 나르비크에 가기로 결심했다. 오랜만에 취한 흰 긴 수염고래에 가서 맥주를 잔뜩 시켜 먹고 만취할 요량이었다. 그렇다고 제 돈을 주고 나르비크까지 텔레포트 할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낡은 코트자락을 훌훌 날리며 광장의 아그네스에게 다가갔다.

평소처럼, 사제(師弟) 집무실로 부탁해.”

아그니스가 손에 든 붉은 메가폰을 꾹 쥐며 쀼루퉁하게 말했다.

또 공짜로 나르비크에 갈 생각이지요? 이제는 정말 안 돼요. 마틴 씨가 제게 얼마나 잔소리하는지 알아요? 사제 업무와 상관없는 사람을 함부로 텔레포트 시켜주지 말라고.”

하지만 너에게 부탁하면 공짜인걸.”

막시민이 턱을 매만지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럼, 딱 이번만 부탁할게.”

아그네스가 양 손을 허리에 댄 채 투덜거렸다. 거짓말일게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막시민 외에 그런 편범을 사용하여 공짜로 텔레포트하는 학생은 많았다. 그러나 막시민의 행동은 유독 독보적이라 사제 집무실 마틴의 골칫거리가 되었다. 차라리 말쑥한 학생차림이라면 그러려니 내버려두었을 텐데, 다른 네냐플 학생들과 달리 막시민은 늘 손질하지 않은 머리에 거적때기 같은 코트차림으로 나타나 사제 집무실 문을 열고 나르비크 거리로 나갔다. 그런 너저분한 손님이 빈번히 출입하면 집무실의 품격이 떨어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러한 마틴의 마음과 달리, 아그니스는 부탁을 받은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울상을 지을 마틴 씨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결국 아그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쩔 수 없지요. 그러면 시작합니다. 순간 이동, .”

눈앞이 번쩍하는 순간, 바로 나르비크의 사제 집무실로 이동했다. 검은 머리의 견습생 토미가 영업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러나 그 인사는 채 3초를 넘기지 못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당신은…….”

또 신세 졌네. 그럼 이만.”

막시민이 능청스럽게 손을 휘저으며 인사했다.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나가는 막시민의 뒷모습을 보며 마틴이 콧수염을 씰룩였다. 당연히 마틴 씨의 불평 따위 막시민의 귓가에 들릴리 없었다.

기분 좋게 주점으로 달려가려는데, 막시민의 기분을 퍽 상하게 하는 만남이 일어났다.

오랜만이네요. 잘 지냈어요?”

막시민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말을 걸어온 남자를 피했다.

댁에게는 일 없슈.”

저 반짝이는 금빛 머리카락과 계절감 없는 푸른 머플러를 두른 수상한 여행가와 엮여서 좋은 일을 겪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이상한 빨강 머리의 친구인데다가 때로는 랑켄 녀석보다 더 얼토당토 않는 말을 꺼낸다. 거기다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윙크까지, 무엇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녀석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롱소드는 항상 막시민의 행동에 관심이 많았으며, 오늘도 생글생글 웃으며 괜히 말꼬리를 붙잡았다.

저는 당신에게 용무가 있답니다.”

한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은 채 막시민이 롱소드를 노려보았다. 어디 뒷골목을 주름 잡는 건달 같은 행**지였다.

귀찮은 일은 안 한다고.”

네네. 당신은 언제나 귀찮은 일을 싫어하지요.”

갑자기 롱소드가 웃음을 거두었다. 그리고 예의 기분 나쁜 윙크를 하며 묘한 말을 던졌다.

그런 태도를 보니, 역시 아무 것도 기억 못하나 보네요.”

?”

기억하지 못한다면, 그것도 인연이겠지요.”

막시민이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왜인지 또 다시 눈가가 축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 찜찜한 현상의 이유를 롱소드는 알고 있는 건가.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막시민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넌 뭔가 아는 것 같은데? 아는 대로 다 말하라고.”

대답은 없었다. 눈을 비비며 뒤를 돌아보자, 롱소드는 온데간데없었다.

 

 

 

막시민은 본래 예정대로 취한 흰 긴 수염고래에 들어가 또 다시 외상술을 잔뜩 시켰다. 술값은 돈 많은 귀족 친구의 이름으로 달아 놓았다. ‘그 고생을 하며 살려줬으니, 친구에게 술 몇 잔 정도로 아깝다고 투덜대지는 않겠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빌드라크가 맥주잔들을 차례차례 내왔다. 그가 금빛 콧수염을 벌름이며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정말이지, 아르님 소공작 친구라는 거 정말 못 믿겠다니까?”

전에 그 녀석 데려온 걸 벌써 잊은 거야?”

그래. 그 때 소공작을 직접 뵈지만 않았다면 이런 외상 손님 국물도 없을 텐데.”

첫 잔은 기분 좋게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문제는 두 번째 잔부터였다. 존이 수선을 떨며 엄청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는 맥주잔을 든 채 메렌 옆에 앉아 종알종알 떠들어댔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어요? 지금 오를란느는 대 혼란이래요. 특히 수도 오를리의 민심이 땅에 떨어졌다는군요.”

그래?”

메렌은 별 관심이 없는지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다. 존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은 도리어 막시민 쪽이었다.

이렇게 소식이 어두워서야. 들리는 소문에 오를리 근처의 동굴이 무너져 내리며 마을 하나가 쑥대밭이 됐대요. 정말 못 볼꼴이라던데. 한참 앳된 아이들도 모두 죽었다고 합디다.”

존의 말이 끝나자 누군가가 바로 화제(話題)를 받았다.

나도 그 소식 들었어. 전부 악한 정령 탓이라느니, 정말 흉흉한 소문뿐이더라고. 결국 민심을 달래기 위해 크라레트 공작이 각지에 병사를 배치했다지?”

이러다 또 전쟁이라도 나는 게 아닐지 모르겠어요.”

예끼. 젊은 녀석이 그런 말 하면 못 써. 끔찍한 소리 입 밖으로도 내지 말게나.”

맥주잔을 쥔 막시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두 번째 잔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쉽게 비워지지가 않았다. 미각은 점점 더 둔감해지는데 청각은 지나치게 예민해졌다.

맞다. 이번에는 다른 소식인데. ‘필멸의 땅에서 또 사람이 실종됐다지?”


……정말이지 술맛 떨어지는 이야기뿐이다.

 

 

 

* * *

 




 

2개의 댓글

(0/5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