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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소설] [메이플 스토리] 머쉬룸 스토리

버섯의 성을 하다가 NPC인 버섯들과 몬스터인 버섯들 사이의 취급 차별에 착안해서 쓴 글입니다.


헤네시스의 버섯 퀘스트와 버섯의 성을 하신 분들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죠?


그럼, 몬스터(떠돌이) 버섯들을 위해 움직이는 하얀버섯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온갖 개성 넘치는 버섯들이 모여 만든 버섯들의 왕국, 버섯의 성. 정식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아 모험가들과 공존하며 지내는 버섯들이 사는 곳. 하지만 그곳에 들지 못한 버섯들은 필드에서 돌아다니며 험난한 삶을 살아간다.



그저 버섯 집으로 변하지 않기 위해 뛰어다니는 주황버섯들은 경험치를 얻기 위한 모험가들에게 베이고, 단지 느긋하게 걸어 다니는 초록버섯들은 마법에 맞아 쓰러진 후 샐러드를 위해 갓이 벗겨져 길거리에 널브러진다.



버섯의 성에 속한 자들과 내쳐진 자들 간의 차별은 이처럼 삶과 죽음을 가를 정도로 냉혹하다. 아니, 이미 죽은 버섯조차도 부적 때문에 안식을 찾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모든 버섯들의 어머니이신 머쉬맘께서도 버섯의 성에 들어가시지 못하고 숨어있는 것이 고작인 이 현실이 옳은 것인가? 버섯의 왕이라고 칭하는 머쉬킹은 모든 버섯들의 어머니마저도 내쳐버리고, 저 버섯의 성안에서 자신의 딸과 희희낙락하며 지내고 있다! 자신의 왕국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권력만을 탐하여 세상의 죽어가는 버섯들을 외면하는 저 작태를 보라! 이게 정녕 왕이 보일만 한 치정인가?



우리의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우리 버섯들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일어나라! 버섯의 용사들이여! 저 무능한 왕을 몰아내고 버섯의 역사를 다시 세우자!




한 버섯이 초록버섯 수배 표지판 뒤편에서 버섯들만이 볼 수 있는 포자로 쓰인 글을 천천히 읽어나갔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은 후, 버섯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생각에 잠겼다. 지나가던 모험가들이 가만히 서 있는 이름 모를 버섯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처음 보는 버섯 몬스터인데? 아, 스탄 장로님께서 말씀하신 이상한 버섯의 일종인가 보다.”



“내가 보기에는 완전 새로운 몬스터인 거 같은데? 아무렴 어때, 잡으면 되지. 자, 경험치와 아이템이 궁금한데…읏차!”



쉬익- 쾅!



전사의 슬래시 블러스트가 대기를 가르는 파공음과 함께 지나갔지만, 전사의 도끼는 아무것도 베지 못하고 땅바닥에 박혔다. 전사는 이와 같은 특유의 손맛과 함께 동반되는 현상을 알고 있었다.



“미스…?”



“엥? 미스? 이 사냥터의 레벨대로는 미스 뜰 일이 없을 텐데…?”



두 모험가들이 지금까지 없던 일에 당황하여 허둥대는 사이, 생각을 마친 버섯은 고개를 돌려 두 모험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하얀 눈처럼 새하얀 갓을 쓰고 있는 버섯이 아무런 행동 없이 자신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상황. 모험가들은 왠지 모를 오한이 들어 움직일 생각조차 못 하고 굳어있었다.



가만히 둘을 쳐다보던 하얀 갓의 버섯은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이동하여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그제야 움직일 수 있게 된 두 모험가는 귀신에 홀린 듯한 심정으로 서로를 마주 봤다.



“방금 그 버섯… 뭐였지?”



“나도 몰라…”



그리고 며칠 후, 두 모험가는 하얀색 갓의 버섯에 관한 이야기를 헤네시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반면 모험가들이 있던 장소에서 벗어난 하얀버섯은 생각에 잠긴채로 말없이 걸었다.



‘떠돌이 버섯들은 죽어도 괜찮고 버섯의 성의 일원들만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지금 상황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버섯은 머쉬킹뿐. 하지만 머쉬킹은 오히려 이러한 상황을 묵인하고 있다. 머쉬맘께서도 최근 공격당했다는 소문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민하던 하얀 버섯은 언덕 밑 그늘에서 아직 어린 듯한 작은 체구의 초록버섯들이 떨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무슨 일이기에 저렇게 무서워하나 싶어서 하얀버섯은 초록버섯들에게 다가갔지만, 미처 말을 걸기도 전에 초록버섯들은 누군가 접근하는 낌새를 느끼자마자 바로 도망갔다. 갑작스러운 도망이었지만 아직 어린 버섯들인지라 하얀버섯은 금세 따라잡을 수 있었다. 따라잡힌 초록버섯에게 하얀버섯이 말을 걸었지만….



[저기…]



[히익! 샐러드 되기는 싫어엇-!]



한참 동안 난리를 피우던 초록버섯이 진정하자 그제야 하얀버섯은 어떻게 된 사정인지 들을 수 있었다.



[카밀라라는 인간이 저희의 갓으로 샐러드를 만든다고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넣었어요… 그것도 보이는 모험가들 전부한테요. 얼마 전에도 제 친구가 모험가들의 화살에 맞아 갓이 벗겨진 채로 발견되었고… 흑, 저희는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지내며 사냥당해야 할까요? 일광욕을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안 나요.]



[혹시 버섯의 성에서는 아무런 도움도 없었니?]



[그렇지 않아도 버섯의 성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저희 무리의 대장이 가긴 했는데… 소식이 끊긴 지 3달이 넘었어요. 지원이 오지 않는 것 봐서는 아마…]



말을 끝까지 못하고 흐리는 초록버섯의 모습을 ** 않아도 뒷말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 가는 길에 모험가들에게 사냥당했겠지. 



모험가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많은 몬스터들이 인간들을 적대시하며 공격하는 일은 빈번했고, 모험가들도 그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사냥을 하며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은 이 세계에서 필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떠돌이 버섯들과 버섯의 성 버섯들의 차이점은 단지 소속의 차이일 뿐, 인간들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는 점은 동일한데 떠돌이 버섯들은 지금 상황처럼 무차별적으로 학살당한다. ‘버섯의 성의 버섯들은 인간들과 소통이 가능해서 사냥당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지만, 생각해봐라. 보자마자 모험가들에게 공격당하는데 인간의 말을 배우기는커녕 도망가기 바쁜 게 현실인 것이다.



[…마침 내가 버섯의 성에 볼일이 있으니 가능하다면 지원 요청을 해보마. 그때까지 잘 숨어있어라.]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도 일이 잘되길 바랄게요!]



꾸벅 인사를 한 초록버섯은 아까 무리가 도망가던 방향으로 향했고, 하얀버섯은 그 순간 다음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지혜가 필요했다. 버섯의 성의 지원에만 의존하지 않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을 강구할 수 있는 지혜가! 그리고 버섯들에게는 가장 현명한 조언자가 있었다.



모든 버섯들의 어머니, 머쉬맘. 하얀버섯은 그녀를 찾아가기로 했다.





일단 헤네시스 근처에서 머쉬맘이 많이 목격되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하얀버섯은 그 근처를 조사해보기로 했다.



‘일단 북쪽부터 조사해볼까…’



모험가들이 득실거리는 헤네시스를 관통해 지나갈 수는 없으니 외각으로 빙 둘러서 돌아가니, 저 멀리서 기운차게 뛰고 있는 주황버섯들을 볼 수 있었다. 하얀버섯이 머쉬맘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기 위해 다가갔지만, 주황버섯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누구냐! 본 적 없는 버섯인데, 혹시 ‘녀석’들의 정탐하러 온 첩자는 아니겠지?]



[혹시 방해했다면 미안하군. 그냥 뭘 좀 물어보러 온 것일 뿐인데…]



하얀버섯이 부드럽게 말하자, 날카로웠던 주황버섯들의 분위기도 조금 누그러졌다.



[음, 저렇게 정상적으로 말하는 걸 봐서는 첩자는 아닌 것 같네. 뭘 물어보러 왔지?]



[혹시 머쉬맘께서 어디에 계신지 알고 있나 해서 말이야.]



하얀버섯의 말에 주황버섯들은 잠시 모여서 쑥덕거리더니, 대표를 맡은 주황버섯 하나가 나와서 미안한 듯 말했다.



[미안, 우리도 머쉬맘께서 어디 계신지 정확히는 몰라. 단지 여기 헤네시스 북쪽에는 없으셔. 남쪽으로 가보는 걸 추천할게.]



[그 정도 정보만 되어도 고맙지. 그런데… 혹시 다른 몬스터와 마찰이라도 있는 건가?]



하얀버섯의 말에 주황버섯들은 쉴새 없이 뛰면서도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게 말이지…]



그러면서 이어지는 주황버섯의 설명. 이야기를 다 들은 하얀버섯이 그들의 말을 요약했다.



[그러니까… 얼마 전부터 이상한 표정으로 다니는 불량한 주황버섯들이 나타났는데, 그놈들이 영역을 넓히려고 시비를 걸어온다, 이 말이로군?]



[맞아, 처음에는 그냥 특이한 애들이구나 했는데 점점 도를 넘은 행패를 부리고 있어. 모험가들이 덤벼오는 것도 벅찬데 말이야. 하아… 그나마 우리에게 걸렸던 수배령이 풀려서 다행이지.]



대표로 나왔던 주황버섯의 말에 옆에 있던 다른 주황버섯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우리 버섯들에게 현상수배라니, 웃기지도 않는 일이지. 우리들이 인간을 먼저 공격한 적은 없는데 말이야.]



[모험가들이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봤어? 만만한 몬스터라면 일단 공격부터 하는 놈들인데?]



[필드에서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주황버섯들의 대화를 듣던 하얀버섯은 자신의 새하얀 갓을 매만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앗, 가게?]



[필요한 정보는 얻었으니까. 알려줘서 고맙다. 그 이상한 버섯들과의 일은 잘 해결되길 바라겠어.]



[너도 머쉬맘님을 무사히 만날 수 있길 바래. 가자, 얘들아!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자고!]



대표 주황버섯이 주황버섯 무리를 우르르 이끌고 사라지는 것을 보며 하얀버섯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필드에서 살고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다’라... 그 생각 때문에 수많은 버섯들이 죽었고, 또 사냥당하고 있다. 누군가 바꿔야만 해.’



머쉬킹이, …아니면 다른 누군가라도.





하얀버섯은 다시 헤네시스 남쪽으로 계속 걸어나갔다. 어린 초록버섯들은 무사히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고, 좀 더 남쪽으로 가자 뿔버섯들이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뿔버섯 수배 표지판이 보일 때쯤, 몇몇 모험가들이 수배 표지판에서 의뢰를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주황버섯의 수배령만 풀렸다고 하더니, 뿔버섯의 수배령은 그대로인가 보네. 응?’



하얀버섯은 저 멀리서 뿔버섯 무리가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그 버섯들의 상태가 하얀버섯의 관심을 끌었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분노한 뿔버섯들의 모습에 하얀버섯은 조심스럽게 그들에게 접근했다.



[넌 누구냐! 괜히 달라붙지 말고 **! 캭, 퉷!]



분노에 이성을 잃었는지 초면에 막말을 하는 뿔버섯들의 모습에 하얀버섯은 조용히 그들에게 다가갔다.



잠시 후.



[제성함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먄…]



붉어진 얼굴은 팅팅 부어오른 형태로 바뀌었고, 입술도 부어올라 발음이 새어나가는 뿔버섯의 말에 하얀버섯이 조용히 말했다.



[대표 버섯 한 명만 나와서 5줄 안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



그 말에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앞으로 나서지 못하는 뿔버섯들. 하지만 하얀버섯의 혀 차는 소리에 결국 처음 말을 했던 뿔버섯이 앞으로 나왔다.



[얼마 전부터 모험가들이 수배령에서 요구하는 것보다 저희를 많이 사냥하기 시작했습니다. 좀 더 알아보니 카밀라라는 인간이 저희의 갓으로 뿔버섯 파이라는 것을 만든다고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넣었다고 하더군요. 그것도 한두 번이지, 몇 달째 그런 상태다 보니 저희도 너무 화가 나서 몰려가던 중 하얀버섯님을 만나게 된 겁니다.]



하얀버섯은 생각보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대표 뿔버섯에 놀랐지만,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렇게 논리정연한 뿔버섯이 분노에 눈이 돌아갔을까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그나저나 카밀라라는 인간이 만악의 근원이었군. 버섯들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길래 모험가를 이렇게까지 풀어?’



위험인물 목록에 카밀라라는 이름을 새겨넣은 하얀버섯은 대표 뿔버섯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네. 정신 차리라고 한 일이긴 했지만, 심하게 때린 건 미안하다.]



[아닙니다. 솔직히 아까 그대로 몰려갔으면 저희는 몰살당해서 파이의 재료가 되었을 겁니다. 덕분에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아요.]



뿔버섯의 차분한 말에 하얀 버섯은 더욱 미안해져 좀 더 어깨를 두드려주다가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온 건 다름 아니라 머쉬맘님을 찾기 위해서인데, 혹시 뭔가 알고 있는 거 없어?]



하얀버섯의 말에 뿔버섯은 잠시 하얀버섯을 보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어떤 일로 머쉬맘님을 찾으시는지 말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버섯들은 동등하게 인정받지만, 나머지 버섯들은 몬스터로 분류되어 사냥당하는 이 상황을 타개할 지혜가 필요해. 머쉬맘님이라면 분명 옳은 방향을 알려주실 거다.]



하얀버섯의 말에 뿔버섯이 잠시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윽고 눈을 뜨며 말했다.



[그런 목표라면… 버섯으로서 안 가르쳐드릴 수가 없군요. 따라오시죠. 머쉬맘님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대표로 불려 나왔던 뿔버섯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고, 하얀버섯이 그 뒤를 따르며 물었다.



[다른 뿔버섯들은 괜찮겠지?]



[아까는 화가 잔뜩 나 있어서 그랬지만, 원래는 차분하고 이성적인 친구들이에요. 아마 알아서 흩어질 겁니다.]



한참 동안 말없이 앞장서던 뿔버섯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적지 않은 버섯들이 하얀버섯님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힘이 없어서, 또는 용기가 없어서 속에 묻어둔 버섯들이 대부분이었죠. 저도 그런 버섯 중 하나였고요. 개인의 힘으로 다수의 인식을 바꾸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버섯왕국의 기득권층을 포함한 장애물이 너무 많았기에 저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묵묵히 듣던 하얀버섯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신도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하얀버섯님이라면 가능하실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부디 성공하셔서 필드의 떠돌이 버섯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세요. 오랜 시간 떠도는 생활을 하셔서 쇠약해지신 머쉬맘께서 맘 놓고 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절절하게 닿는 뿔버섯의 진심 어린 부탁에 하얀버섯은 많은 말 대신 그저 짧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서 뿔버섯이 한 오솔길 앞에서 멈춰 섰다.



[여기가 머쉬맘께서 요양하고 계신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부디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뿔버섯의 배웅을 뒤로하며 하얀버섯은 오솔길을 따라 걸어갔다. 머쉬맘이 어떤 조언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하얀버섯은 지금까지 만났던 버섯들의 비참한 생활을 멈출 수 있기를 바랐다. 초록버섯의 공포, 주황버섯의 체념, 뿔버섯의 분노… 그 모든 상황의 원인을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바라며, 하얀버섯은 오솔길의 끝에서 거대한 버섯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서 오너라, 하얀 갓의 아이야. 찾아온 이유가 있는 듯한데, 무슨 일이니?]



자애롭고 따스한 목소리였지만, 머쉬맘의 말 한편에는 숨길 수 없는 고통과 피로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하얀버섯은 머쉬맘을 본 순간 그 이유를 바로 알 수밖에 없었다. 머쉬맘의 몸체 곳곳에는 상당히 심하게 다친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고, 그녀는 꽤 고통스러운 듯한 숨을 내쉬고 있었으니까.



[어머니, 그 상처들은…?]



하얀버섯의 떨리는 음성에 머쉬맘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떠도는 생활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생긴 상처들이란다. 모험가들이 호전적인 건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버섯들도 다 알잖니. 후후, 이런 상처 얘기보다는 네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머쉬맘의 말에 하얀버섯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어머니께서는… 지금 필드에서 생활하는 버섯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말에 머쉬맘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가엾은 아이들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모험가들의 공격을 피하려고 도망가는 아이들이니…]



머쉬맘의 탄식 어린 대답에 하얀버섯은 이어서 말했다.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시겠지만, 버섯의 성에서 살고 있는 버섯들은 모험가들과 동등한 존재로 인정되며 교류까지 하며 지냅니다. 하지만 필드에 있는 떠돌이 버섯들은 그저 사냥감 취급을 받으며 도망 다니고 있죠. 저는 이 상황을 바꾸고 싶지만, 도저히 어떻게 해야 될 지 방법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지혜를 빌리고 싶어요. 모든 버섯들의 어머니시여,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얀버섯의 간절한 물음에 머쉬맘은 잠시 시선을 멀리 두었다가 결심을 굳힌 듯 다시 하얀버섯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하얀 갓의 아이야, 나도 어머니로서, 혹은 어머니 이전의 버섯으로서 그 문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단다. 지금 버섯왕국을 이끌고 있는 머쉬킹을 찾아가 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 하지만 너희들이 내 아이들인 것처럼, 버섯왕국의 아이들도 내 자식들인지라 한쪽만을 위해 뭔가를 요구할 수는 없었어. 무엇보다 머쉬킹 그 아이에게도 많은 고난이 있었고, 그 아이에게도 그만의 사정이 있었기에 나는 더더욱 중립을 취할 수밖에 없었단다.]



[어머니, 하지만…!]



[네가 뭘 말하고 싶은지 안다. 머쉬킹 그 아이의 개인적인 사정으로만 따지기에는 너무 많은 버섯들이 지금 상황에 얽매여 있지.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없단다.]



머쉬맘의 충격적인 말에 하얀버섯은 다급히 되물었다.



[어, 어머니…어째서?]



[나도 수많은 버섯들이 걱정되지만, 이 세상에 내가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이 못난 어미는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자신의 죽음을 덤덤한 목소리로 고하는 머쉬맘의 모습에 하얀버섯은 충격을 받고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하얀버섯이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마지막을 준비하신다는 말은… 어머니께서 곧… 돌아가신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단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렇게 네가 찾아와줘서 마음 편히 갈 수 있을 것 같구나.]



머쉬맘의 죽음에 대한 확답을 받아 멍하니 있던 하얀버섯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머쉬맘을 바라보았다.



[너라면 마지막까지 걱정되었던, 그러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미안했던 내 아이들의 상황을 바꿔줄 수 있을 테니까. 구태여 내 지혜를 빌리지 않아도, 너는 할 수 있을 거란다. 하얀 갓의 아이야, 버섯 왕국으로 가보거라. 그리고 그들의 말도 한번 들어보는 거야. 그리고 어떻게 할지 결정하거라. 이게 내 마지막 조언이구나.]



천천히 하얀버섯 앞으로 다가온 머쉬맘은 하얀버섯 앞에 무언가를 떨어트렸다. 천천히 그 물건을 주워들은 하얀버섯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버섯이라면 누구나 소중히 여겨 죽기 전까지 보관한다는 버섯의 포자. 머쉬맘은 그런 자신의 포자를 하얀버섯에게 넘겨준 것이다.



[혹시라도 버섯 왕국에 가서 머쉬킹을 본다면, 절대 미워하지 않았다고 전해주렴. 그 아이는 항상 마음에 품고 있었을 테니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머쉬맘은 한번 강하게 점프하여 저 멀리 멀어져갔다. 하얀버섯은 머쉬맘의 포자를 든 채로 머쉬맘의 뒷모습을 향해 갓을 기울여 고개를 숙였다.



‘이젠 편히 쉬시길…’





머쉬맘의 마지막 모습을 뒤로하고 하얀버섯은 버섯왕국이 있는 남쪽으로 계속하여 내려갔다. 파란버섯들이 있는 숲을 지나 버섯들이 쌓아올린 성벽 앞에 선 하얀버섯은 굳게 닫혀있는 성문에 얼굴을 굳혔다.



‘수많은 버섯들이 이 굳게 닫힌 성문 앞에서 절망하고 돌아갔겠지…’



[버섯왕국에 볼일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성문 좀 열어주세요!]



혹시나 해서 크게 외쳐**만, 아무런 반응이 없는 성벽에 하얀버섯은 쓰게 웃었다.



[역시…. 쉽게 열릴 성문이었다면 지금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성안으로 들어갈 방법을 찾기 위해 성벽을 빙 돌며 살펴보던 하얀버섯은 성벽에 목조판자로 가려진 부분을 발견했다. 판자 앞으로 가서 슬쩍 밀어보니 버섯 하나는 들어갈 만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바이킹이 쳐들어왔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부서진 부분인가?’



어쨌든 성벽 내부로 들어갈 방법을 찾은 하얀버섯은 냉큼 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하얀버섯이 성벽 안으로 들어가자 버섯들이 활기차게 돌아다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노점상들이 돌아다니면서 머리띠 같은 장신구들을 권하고 있고,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음식을 팔고 있었다. 하얀버섯은 거리에 좌판을 깔고 앉아있는 버섯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자자, 모험가분들! 버섯왕국 제일의 잡화상인 도르가 파는 포션 좀 보고 가십쇼! 잡템 파시는 것도 구매해 드립니다!”



[저기… 말 좀 여쭙겠습니다.]



“엥? 처음 보는 버섯인데… 뭐가 궁금합니까?”



자연스럽게 인간의 언어로 물어보는 도르의 말에 하얀버섯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인간의 언어는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 버섯언어로 말해주세요.]



[아, 실례. 외부에서 온 버섯인가 보네요. 버섯왕국에서는 인간의 언어로 말할 일이 많다 보니. 뭘 물어보고 싶습니까?]



[여기 버섯왕국에 온지 얼마 안돼서 그러는데, 지금 어떤 축제를 하는 겁니까?]



하얀버섯의 물음에 도르는 한심하다는 듯 하얀버섯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디 오르비스라도 다녀오셨나, 소식이 많이 느린 버섯이셨구만. 얼마 전에 여기 버섯왕국에 바이킹이 쳐들어왔는데, 한 모험가가 바이킹들로부터 위기에 빠진 버섯 왕국을 구해줬습니다. 왕국을 구하고 납치당했던 비올레타 공주님을 구출한 그 모험가를 기념하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축제가 벌어진 겁니다.]



[아… 그렇군요.]



하얀버섯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도르는 좌판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제 어떻게 된 지도 알았으니 손님, 기념품이라도 하나 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느새 손님으로 바뀐 호칭에 하얀버섯은 당황했지만, 도르의 손길에 이끌려 좌판 앞의 물품들을 살펴보았다. 포션 종류부터 시작해서 비올레타 인형 고리, 비올레타 방석, 비올레타 피규어… 좌판을 온통 가득 채운 비올레타 굿즈들에 하얀버섯은 당황하면서도 인형 고리 하나를 집으며 도르에게 슬그머니 물어봤다.



[그러고 보니 제 뿔버섯 친구가 비올레타 공주님의 팬인데, 이 인형 고리를 갖다 주면 기뻐할 것 같네요. 그런데 그 친구가 비올레타 공주님을 보러 버섯왕국에 왔었는데 성문이 닫혀있어서 매우 상심한 채로 돌아갔었는데, 성문은 어째서 닫아놓은 겁니까? 필드의 버섯들도 버섯왕국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은 거로 알고 있는데요. 필드의 버섯들도 들어오면 안 되는 건가요?]



그 말에 도르는 인형 고리를 포장하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글쎄요, 성문을 닫아놓은 이유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긴 하죠. 얼마 전 바이킹의 침입과 같은 외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도 있고, 생활 구역을 정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주된 이유는 버섯들 간의 구분일 겁니다.] 



차곡차곡 포장되는 인형 고리를 바라보며, 도르는 어릴적 부모로부터 들었던 버섯왕국의 건국 배경을 하얀버섯에게 말해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모험가들이 활동하는 이 시대에, 항상 공격받고 사냥당하는 버섯들을 이끌고 머쉬킹께서 버섯왕국을 세우셨지요. 버섯왕국이 자리 잡은 후, 적어도 버섯왕국 주민들은 빅토리아 아일랜드의 주민으로 인정받아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지만, 외부에 있는 버섯까지 보호하기에는 왕국의 힘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버섯왕국의 주민과 그렇지 않은 버섯들을 구분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시작된 버섯들 간의 갈등의 골은 점점 더 깊어져 지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포장지에 감싸진 인형 고리를 내밀며 도르는 말을 마무리했다.



[뭐, 말이 장황해졌지만, 필드에 있는 버섯들이 버섯왕국에 들어오는 것에 대한 제 생각은 간단합니다. 저야 물건을 팔 소비자가 많아지니 좋죠. 하지만 상인인 저와 다르게 생각하는 버섯들도 많을 겁니다. 개인의 생각이 집단의 생각과 다른 경우에는 신중해야 하니, 저는 여기까지만 말하는 게 좋겠군요. 구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물건을 샀으면 이만 가보라는 뜻이 담긴 인사말에 하얀버섯은 인형 고리를 품에 넣으며 걸음을 옮겼다. 도르가 생각보다 자세히 말해준 덕분에 하얀버섯은 버섯들 간의 차별이 생긴 이유를 알게 되었지만, 그건 차별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는 이유가 될 수 없었다.



‘좀 더 많은 버섯들의 말을 들어봐야겠어.’





잠시 후, 버섯왕국 내성에 도착한 하얀 버섯은 내성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내성 정문 옆에는 경호대장 버섯이 큰 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이번 축제를 맞이하여 3일간 내성을 개방하기로 했지만, 혹시 모를 수상쩍은 행동을 하면 경비병들에게 체포당할 수 있으니 버섯 왕국의 백성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하얀버섯은 경호대장이 한참 동안 부지런히 치안을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다가, 경비대장이 잠시 한숨 돌리기 위해서 쉬는 모습을 보고 그에게 다가갔다.



[경호대장님이시죠?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러면서 하얀버섯이 맑은 물을 내밀자, 잠시 눈을 가늘게 뜨며 하얀버섯을 바라보던 경호대신은 맑은 물을 받아들고선 벌컥벌컥 마셨다. 한번에 다 병을 비운 경호대장은 병을 옆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크으… 버섯들이 이유 없는 호의를 베풀면 그건 보통 두 가지 중 하나지. 등쳐먹기 위한 미끼이거나, 아니면 그 사람의 호감을 사기 위한 선물이거나. 그런데 너는 둘 다 아닌 것 같아. 뭘 원하지?]



요구사항을 묻는 경호대장의 눈에는 날카로운 경계심이 담겨있었다.



‘이런 버섯에겐 뇌물도 함부로 주면 안 되겠군.’



하얀버섯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그냥 한가지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 드린 겁니다.]



경호대장은 말해보라는 듯 말없이 하얀버섯을 지긋이 바라봤고, 하얀버섯은 크진 않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호대장님은 평소에 이 버섯왕국의 버섯들을 지키시는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경호대장님. 당신은 버섯왕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필드에서 떠돌고 있는 버섯들도 지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순간, 경호대장의 눈에는 날카로운 경계심 대신 고뇌 끝에 남은 착잡함이 자리 잡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하얀버섯의 눈을 바라보며 경호대장은 천천히 얘기를 꺼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지. 분명 이 성 밖의 버섯도 머쉬맘님을 어머니로 둔 형제일지언데, 그들도 지켜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내가 경호대장의 직위에 오르고 나니,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어. 성 밖의 버섯들을 지키고자 한 검은 성 내부를 지키기에도 부족했던 거였지.]



경호대장은 잠시 말을 끊고 품속에서 맑은 물 한 병을 더 꺼내 마셨다. 이번에도 한 번에 병을 비운 그는 분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버섯왕국은 이미 두 번이나 외세의 침략에 당했어. 지금 하는 축제도 어찌 보면 부끄러운 일이지. 외부인에게 구원받은 일을 기념하는 축제라니… 경호대장인 몸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네. 필드에서 떠도는 버섯들의 보호는… 애초에 버섯의 성 방위조차 해내지 못하는 내가 할 자격도 없는 고민이었던 거야. 하지만…]



경호대장은 푹 내려앉았던 갓을 고쳐 올려쓰며 말했다.



[그게 바깥에 있는 버섯 형제들이 위험에 처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하네. 비록 내가 능력이 부족하여 실현하지는 못하지만, 바깥에 있는 버섯들도 지킬 수 있다면 환영할 일이지. 어때, 대답이 되었나?]



경호대장의 말에 하얀버섯은 평소에는 거의 짓지 않는 미소까지 띤 채로 말했다.



[네. 경호대장님의 대답을 들으니 버섯의 성이 버섯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을 알 것 같네요. 경호대장님은 훌륭한 분이셨군요.]



[험험, 용건이 끝났으니 어서 가보게! 그렇게 칭찬해도 뭐가 나오지는 않으니 말이야.]



하얀버섯의 칭찬에 경호대장은 헛기침을 하며 손을 훠이훠이 저었고, 그 모습에 하얀버섯은 쿡쿡 웃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



[그랬다면 다행이군. 온 김에 내성 구경도 한번 해보고 가고. 잘 가게!]





경호대장의 인사를 뒤로하며 하얀버섯은 내성으로 들어갔다. 내성 안에는 많은 버섯들이 돌아다니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연회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커플을 이뤄 춤을 추는 버섯들도 중간중간 눈에 띄었다. 하얀버섯이 그 사이를 지나가던 중, 연회장 한구석에서 외 안경을 쓴 버섯이 그의 부하로 보이는 버섯들을 다그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선 조용히 다가가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그 떠돌이 놈들이 뭐라고 하든지 간에 일단 안된다고 해!]



[그, 그렇지만 내무대신님… 그들도 버섯인지라 버섯왕국에 들어올 자격은 됩니다!]



[그래서 성문을 닫아놓은 거 아냐! 그 떠돌이들이 버섯왕국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너무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진다. 그러면 기존의 왕국 백성들의 삶도 위태로워져!]



그들의 얘기를 듣던 하얀버섯의 얼굴에 꿈틀하고 힘줄이 돋아났다. 필드에서 사는 버섯들에 관한 게 분명한 이야기에 하얀버섯은 기척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더 가까이 접근했다. 내무대신과 관리들의 대화가 아까보다 좀 더 선명히 들려왔다.



[그래도 그들도 버섯이지 않습니까? 심지어 머쉬맘께서도 못 들어오고 계신다고 합니다. 그들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그들을 위한 대책을 세우다 우리 버섯왕국의 금고가 뿌리 뽑힐 수도 있어. 지금 현 상황이라도 유지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야! 머쉬맘님까지 막아야 하는 건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인상 깊은 선례가 남으면 더더욱 걷잡을 수 없어져. 이건 머쉬킹께서도 허가하신 사항이니까 더 뭐라 하지 말도록!]



휙 소리 나게 돌아서는 내무대신의 모습에 어떻게든 설득하려던 관리 버섯의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어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하얀버섯은 조용히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래, 일반적인 버섯왕국의 상층부는 저런 태도일 수밖에 없지. 섣부르게 움직이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까지 위태로울 수 있으니까. 하지만 필드의 버섯들의 고통을 알면서도, 간절히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아.’





답답한 속을 가라앉히기 위해 돌아다니던 하얀버섯은 계단 너머로 보이는 테라스를 발견하고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바람을 좀 쐬면 나아지겠지… 응?]



테라스에 도착한 하얀버섯은 먼저 도착해 난간에 서 있는 한 여성을 발견했다. 프릴이 달린 드레스, 얼굴을 가리는 면사포, 분홍색 버섯의 갓… 뒷모습일 뿐이었지만 하얀버섯은 그녀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하얀버섯이 흠칫 뒤로 물러서자 그 기척을 느꼈는지 그 여성은 뒤를 돌아봤다.



[어머, 다른 버섯이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혹시 방해되었다면 물러가겠습니다, 비올레타 공주님.]



비올레타의 청아한 목소리에 하얀버섯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이어진 그녀의 부탁에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괜찮아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랑 얘기 좀 하지 않을래요?]



[저라도 괜찮으시다면.]



그리고 이어진 비올레타와의 대화에서 하얀버섯은 생각보다 그녀와 대화가 잘 통한다는 것을 느꼈다.



[헤헤, 그래서 붙잡혀있다가 용사님이 절 구출해주셨는데, 하셨던 말씀이… '비올레타 공주님.... 입 안 다물면 진짜 버리고 간다.’ 이거였어요. 제가 좀 말이 많았나 봐요.]



[그래도 그렇지, 버리고 간다니… 용사도 너무 했군요.]



가끔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렇게 비뚤어진 줄 알았던 총리대신이 사실 제 친아버지였다니… 아직도 가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많이 놀라셨겠네요. 그래도 비올레타 공주님이 비올레타가 아니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시간이 지나면 좀 생각이 정리될 겁니다.]



때로는 무겁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던 두 버섯은 서로 부쩍 가까워진 것을 느꼈다. 슬슬 헤어질때가 된 것을 느끼며 하얀버섯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공주님, 사실 저는 버섯왕국 바깥에서 온 떠돌이 버섯입니다.]



[어머, 그래요? 사실 하얀버섯님이 얘기해준 경험들은 버섯왕국 내에선 하기 힘든 것들이라 예상하긴 했어요. 그래서, 이 왕국에는 어쩌다 오셨나요?]



비올레타의 질문에 하얀버섯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은 천천히 풀어나갔다. 초록버섯의 부탁, 주황버섯들의 이야기, 뿔버섯들의 분노어린 돌격 등의 일을 겪은 후 머쉬맘님의 조언을 듣고 다양한 버섯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왔다는 것까지. 모든 이야기를 풀어낸 하얀버섯은 비올레타를 바라보고 물었다.



[비올레타 공주님. 공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진지한 하얀버섯의 말에 비올레타는 갓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저는 버섯왕국 안에서만 있어서 경험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 의견을 말하자면 지금 버섯왕국으로는 떠돌이 버섯들을 모두 보호하기에는 사실상 힘든 것 같아요.]



[그런가요…]



비올레타의 말에 하얀버섯은 살짝 기운 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지만 이어진 비올레타의 말에 하얀버섯은 고개를 들었다.



[말은 끝까지 들으셔야죠. 지금 상태로는 힘들지만, 버섯왕국의 힘을 길러 나가며 조금씩 바꿔나가면 성 밖의 버섯들도 모험가들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우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하얀버섯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비올레타는 이어서 말했다.



[지금 버섯왕국은 많이 보수적이기 때문에 변화하기 힘들어요. 현상유지에는 좋겠지만, 서서히 그 세력이 깎여나겠죠. 백성들도 슬슬 바뀌어야 할 때가 온 걸 알겠죠. 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예요. 아버지, 그러니까 머쉬킹께서는 변화하는 걸 두려워하고 계셔요. 아버지가 바뀌지 않으면 아마 왕국을 변화시키기는 힘들 거에요.]



하얀버섯을 지나쳐 계단을 향해 가며 비올레타는 그에게 속삭였다.



[내성 뒤쪽에 있는 장미 정원에 가보세요. 이 시간대에 아버지는 매번 혼자 그곳에 가시니까 만나 뵐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비올레타가 계단 밑으로 사라져 간 후, 하얀버섯은 그녀의 말을 따라 내성 뒤쪽으로 향했다. 장미들이 곳곳에 심겨 있는 화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거대한 장미가 피어있는 화단 앞에 왕관을 쓴 채로 서 있는 늙은 버섯이 있었다.



[머쉬킹님, 맞으십니까?]



[ ...처음 보는 갓의 버섯이로군. 내가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왔지?]



노쇠한 몸을 돌려 하얀버섯을 마주 본 머쉬킹의 물음에 하얀버섯이 답했다.



[당신의 딸, 비올레타 공주님께서 말씀해주셨습니다.]



[비올레타가…? 내 딸이지만 까다로운 아이인데, 잘도 듣고 왔구나. 그래, 나를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머쉬킹이 하얀버섯을 내려보듯 바라보며 말하자, 하얀버섯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왕이시여,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필드에서 살아가는 떠돌이 버섯들도 버섯왕국에 들어올 수 있게 해주십시오. 아니면 적어도 허무하게 사냥당하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하얀버섯의 당당한 요구가 무례해 보였는지, 머쉬킹은 흰 눈썹을 살풋 찡그리며 말했다.



[당돌한 아이로구나. 좋은 의도로 말했다만… 안 되겠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째서입니까? 버섯왕국의 일원이 못 되더라도, 무자비하게 사냥당하는 일은 없어져야 합니다. 이미 버섯왕국 주민이라는 선례가 있지 않습니까.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머쉬킹의 거절에 하얀버섯이 열성적으로 설득하려 했으나, 이미 머쉬킹은 거절하기로 단단히 마음먹었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위로 하얀버섯을 찍어 누르려는 듯 언성을 높였다.



[모험가들로부터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위해 우리 버섯왕국이 들인 노력은 결코 가벼운 게 아니었다. 떠돌이 버섯들까지 그 과정을 거치려면 우리 왕국의 사정은 급격히 나빠질 것이야. 국왕으로서 그런 건 허락할 수 없다!]



[왕이시여, 그 대가는 떠돌이 버섯들이 앞으로 갚아나갈 것이옵니다. 부디 다시 한번 재고해주시지요.]



하얀버섯이 간절한 청에도 머쉬킹은 코웃음 치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떠돌이 버섯들의 뭘 믿고? 그런 불확실한 것에 내 왕국을 담보로 맡길 수는 없구나!]



[폐하!]



[내 왕국이다! 내가 쌓아올린 왕국이고, 이 정도까지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했는지 아느냐!]



다시 한 번 간절히 청하는 하얀버섯의 말에 머쉬킹은 발작적으로 고함을 지르듯 외쳤다. 그 모습을 본 하얀버섯은 조용히 말했다.



[...머쉬맘께서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필드에서 살아가는 버섯들의 걱정을 하셨습니다.]



[…뭐?]



예상치 못하게 튀어나온 이름에 고함치는 것도 잊고 머쉬킹은 멍하니 되물었다.



[하지만 버섯왕국도, 떠돌이 버섯들도 모두 같은 자식이라 어떻게 할 수가 없다고 하셨죠. 결국 나서려고 하셨을 때는, 그분 자신도 상처 입고 떠도는 생활을 하며 이미 수명이 끝나기 직전이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자신의 포자를 건네면서 하신 말씀이 뭔 줄 압니까?]



[…]



[당신을 절대 미워하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죽기 전까지 자식들 걱정을 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정작 당신은 형제들을 쫓아내고 어머니까지 쫓아내고선 이렇게 자신이 가진 것만을 꼭 틀어잡으려고만 하지!]



머쉬킹은 당황한 듯 아무 말도 못했고, 장미가 만개한 정원에는 울분에 찬 하얀버섯의 말이 울려퍼졌다.



[비올레타는 이미 이 왕국에 변화가 필요한 걸 알고 있었어. 하지만 정작 당신이 바뀌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고, 당신을 설득하라는 의미에서 여기를 알려줬지만… 당신이 절대로 생각을 바꿀 리 없다는 걸 잘 알겠어.]



하얀버섯은 아집에 가득 담긴 머쉬킹의 눈을 똑바로 노려봤다. 늙은 왕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아집으로 가득 차있었다.



[당신이 바꿀 생각이 없다면, 내가 바꾸겠어. …자신밖에 모르는 겁쟁이 같으니.]



늙은 왕을 조롱하며 하얀버섯은 그대로 뒤돌아 나왔다.





그리고 반년 후, 빅토리아 아일랜드에는 버섯 해방군이라는 버섯들의 집단이 등장했고 수많은 버섯들이 새하얀 띠를 갓에 매단 상태로 버섯왕국 앞에 있는 평야에 집결했다. 초록버섯, 주황버섯, 뿔버섯, 파랑버섯… 다양한 종류의 버섯들이 열을 지어 서 있었고, 그 버섯해방군의 선두에는 하얀 갓의 버섯이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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